하고 싶지 않은 게 문제?” 성적 욕구를 둘러싼 오래된 오해

성적 욕구는 단순히 ‘성욕이 많다’거나 ‘성욕이 적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리비도와 신체적 흥분 그리고 성적 욕구가 서로 다른 개념인데도 일상에서는 뒤섞여 쓰이면서 오해를 가질 수 있다.
사이언스포커스에 따르면, 미셸 그리핀 박사가 설명한 성적 욕구는 의학적으로 성관계를 원한다고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이는 고정된 성향이라기보다 몸 상태와 관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반응에 가깝다. 반면 리비도는 흔히 성 충동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흥분은 심박수와 호흡 증가, 생식기 혈류 증가처럼 몸이 성관계에 대비하는 변화를 말한다.
성관계를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도 없다. 횟수와 시간, 방식은 개인이 무엇을 즐겁게 느끼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보다 성관계를 덜 원한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과거에는 성적 욕구를 타고난 성 충동처럼 보는 시각이 강했다. 사람마다 욕구가 높거나 낮게 정해져 있고 이 성향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식의 설명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일부 여성은 단지 파트너보다 성관계를 덜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성욕이 낮은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적 반응을 더 복합적으로 설명하는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이중 조절 모델은 성적 반응이 두 가지 힘의 균형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하나는 성적 반응을 끌어올리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반응을 낮추는 힘이다. 자동차로 치면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가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다.
이 균형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에게서도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날은 가속 페달이 더 쉽게 밟히지만 다른 날은 브레이크가 먼저 작동할 수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피곤하거나 긴장해 있거나 관계가 불편하면 욕구가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안정감이나 친밀감이 커지면 욕구가 살아날 수 있다.
성적 욕구는 나타나는 방식에 따라 자발적 욕구와 반응적 욕구로도 나뉜다. 자발적 욕구는 특별한 자극이 없어도 갑자기 성관계를 원한다고 느끼는 상태다. 주로 젊은 시기나 새로운 관계, 낯선 상황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반응적 욕구는 어떤 자극이나 분위기 뒤에 생기는 욕구다. 책을 읽거나 파트너와 저녁 시간을 보내거나 신체적·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뒤늦게 성관계를 원한다고 느끼는 방식이다.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처음처럼 즉각적인 욕구가 줄어드는 대신 이런 반응적 욕구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의 성적 반응을 설명할 때는 욕구가 반드시 흥분보다 먼저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친밀감이나 신체적 접촉을 통해 흥분이 먼저 나타나고 그 이후에 욕구가 뒤따를 수 있다.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느꼈던 사람이 가까움과 안정감을 경험한 뒤 욕구를 느끼는 일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친밀감은 성적 욕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여기서 친밀감은 단순히 신체적으로 가까운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편안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포함된다. 그리핀 박사는 이런 친밀감이 여성에게 성관계를 원하게 만드는 강한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체적 통증은 성적 욕구를 꺾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다. 관절 통증이 있거나 외음부에 통증과 작열감, 불편감이 생기는 외음부통을 겪는 경우 성관계는 즐거움보다 고통으로 기억될 수 있다. 폐경기에 나타나는 비뇨생식기 증상 역시 성관계를 아프게 만들어 욕구를 낮출 수 있다.
한 번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다음 경험에도 영향을 준다. 몸은 즐겁지 않았던 일을 다시 피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성적 반응을 억제하는 힘이 더 커질 수 있다. 결국 통증이 반복되면 욕구가 줄어드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반응에 가까워진다.
심리적 요인도 욕구를 크게 흔든다. 자신의 몸에 대한 불편감이 있거나 관계가 긴장돼 있으면 성적 경험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즐겁지 않은 경험이 쌓이면 성관계 자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욕구를 느끼는 힘 역시 약해질 수 있다.
일상의 부담도 성적 욕구를 조용히 밀어낸다. 해야 할 일은 끝나지 않고 식사를 준비해야 하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 생기는 욕구는 물론 갑자기 떠오르는 자발적 욕구도 자리 잡기 어렵다.
결국 만족스러운 성생활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성적 욕구는 있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몸 상태, 감정, 생활환경 속에서 달라지는 반응이다. 그리핀 박사는 성적 욕구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동기를 더 잘 이해하고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주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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