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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사진, 한국은 눈감고 일본은 호평”

[섹스 파이오니아] 누드사진 개척 이재길 교수 ①❷③

패션누드 사진집 《Woman & Man》. 여체의 아름다움을 미려하게 담아냈다. (사진= 이재길 교수 제공)

 

이 교수의 명동 생활은 밤낮없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 땅에 광고사진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끼니를 잊고 일했다. 더러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죄책감이 고개를 들곤 했지만, 사진에 대한 뜨거움이 그것을 덮었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사진의 무릉도원에 빠져 연락이 끊긴 막둥이를 찾으라고 며느리에게 SOS를 쳤다. 형수는 기신기신 시동생을 찾아왔다가 깜짝 놀랐다. 막둥이의 얼굴이 반쪽이 된 것. 이 교수는 밤낮없이 일하느라 자신이 폐결핵과 급성간염에 걸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황달을 지나 흑달이 와 온몸이 거무튀튀했다.

 

“병원에서는 오래 못 살 것 같다고 진단했고 곧바로 귀향할 수밖에 없었지요. 동대구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맨날 교통비가 아까워 걸어 다니시거나, 버스를 타시든 분이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택시를 잡았습니다. 곧바로 대구시내에서 사촌매형이 원장으로 있는 이철상내과의원(현 대한내과)으로 향했지요. 그 길이 참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 교수는 서울 의사의 말과 달리 건강을 되찾았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아버지와 지극 간호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꼭 일어서야 했다. 어머니가 칠성시장에서 사온 개고기와 돼지고기를 꾸역꾸역 먹으면서 체력을 비축했다. 사촌매형이 주치의가 된 것도 행운이었다. 이 원장은 대구 경북지역에서 위 질환과 결핵 치료의 손꼽히는 명의였다. 병원에 위내시경 장비를 설치하고 원내 현상소에서 직접 사진을 현상해서 환자 치료에 쓸 정도로 최신치료에 앞장선 의사였다.

 

이 교수는 몸을 꿈적이게 되자 다시 카메라를 찾아 친구인 권중인 전 경성대 교수의 집 2층 창고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는 우연히 자신에 버금가게 사진에 미친 박 매리 다니엘 수녀를 만났다. 수녀는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의무기록학과 사진학을 공부했고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어 했다. 이 교수는 미국 유학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일념에 수녀를 도왔다.

이 교수의 사진 활동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던지, 수녀가 속한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서 안셀모 수사가 후원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시가 400만 원대의 독일제 린호프 카메라를 사주기까지 했다. 당시 봉급쟁이가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살 수 있는 고가품이었지만, 미래의 세계적 사진작가를 위해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야근해서 갚아라!”며 선물한 것. 다니엘 수녀는 더 큰 선물을 줬다. 수녀는 이 교수에게 자신의 수양동생을 소개시켜줬고, 두 사람은 사랑을 싹틔워 결혼에 이르렀다.

 

이 교수는 결혼비용을 아껴서 이듬해인 1977년 충무로로 복귀했다. 오로지 광고사진으로 우뚝 서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는 삼성, 코오롱 등의 홍보실에 무작정 찾아가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물량을 따냈다. 마침 우리나라에 기성복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여서 수요가 넘쳤다. 광고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부족할 때여서 이 교수의 주가는 올라갔다. 《멋》 《여원》 등 잡지에서 화보 요청이 밀려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업에서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찍새’로 보는 겁니다.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페이지를 찢어서 ‘이렇게 찍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작가정신이 상처를 받았다고나 할까요? 제 작품을 찍고 싶었습니다.”


패션누드 사진집 《Woman & Man》. 꽃 한송이를 쥔 여인의 나신을 담았다. (사진= 이재길 교수 제공)


이 교수는 1970년대 말부터 패션사진과 함께 누드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본 오키나와로 ‘원정’을 가서 찍은 작품으로 1985년에 패션누드 사진집 《Woman & Man》을 펴냈다. 이 사진집은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분도인쇄출판사에서 밤샘 작업 끝에 나왔다. 천주교 수도원에서 누드사진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인쇄를 결정한 것.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과 사진계에서는 한국미를 표현한 누드사진 작가의 출현에 눈을 감았다.

 

일본에서 발표한 《환(幻)》시리즈. 전통적인 아름다움 속 신선한 에로티시즘이 담겨있다. (사진=이재길 교수 제공)


이 교수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먼저 화제였다. 일본 사진전문지 《포토자폰》에서 15쪽에 걸쳐 특집으로 소개했고, 일본문화원에서는 《빛과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누드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일본 팬탁스 포럼 초대전에서는 한국여인들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환(幻)》 시리즈가 소개됐고 일본 최대 출판사 코뷴샤(光文社)에서 이 교수의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의 예술미를 표현한 누드 사진작가가 탄생했지만,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먼저 호평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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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 기자 stein33@bodi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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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이제 1편밖에 안남았다니 벌써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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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사진, 언제쯤 예술로 인정받을까요?"

    일본 사진계에서는 이 교수의 누드사진이 은은한 동양의 예술미가 서려있는 작품이라고 흥분했다. 일본 사진계가 이 교수의 예술세계를 인정하자, 관망하던 국내에서도 궁둥이를 떼기 시작했다. 1985년 서울에서 《빛과 여인들》 주제의 전시회에 이어 이듬해부터 매년 《환(幻)》 시리즈의 누드사진전이 열렸다. 그러나 누드사진이 눈요기로 여겨지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의 뜨거운 관심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1988년 여성잡지 《여원》에서 “사진예술작품들, 일본으로 건너가 포르노성 기획으로 둔갑"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교수의 작품 활동을 비판한 것. 한 마디로 왜인들에게 한국 여자를 포르노 배우로 판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졸지에 포르노 배우가 된 모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일본에서 발간한 책을 모두 폐기시키고 《여원》과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누드사진집 소송에는 한국사의 거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씨의 변호는 당시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차례로 맡았고, 대법원 판결은 이회창 전 총리가 담당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에서 이겼고, 전량 폐기했던 책을 보완해서 사진집 《몽환》을 펴냈다. 사진집의 이 사진집에서는 소설가 최인호, 시인 조병하 등 당대의 문인들이 서문을 썼다. 출판은 국내 최초의 사진평론가 김승곤 씨와 부인 임향자 씨가 운영하는 타임스페이스 출판사에서 맡았다. 명예 회복 전시회도 열었다. 비로소 우리나라 사진비평계에서도 이 교수의 작품세계가 한복과 여체가 어울린 ‘한국적 누드사진’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소송에서 이기면서 지명도가 올라갔다고나 할까요? 남대문시장 의류회사들의 패션사진 주문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유학파가 찍은 사진은 예술 취급을 받고, 토박이 사진작가가 찍은 것은 포르노 취급을 받는 현실에 대해 회한이 밀려왔지요.” 1993년에 그는 후배인 당시 임영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의 소개로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로 유학을 떠났다. 막상 뉴욕에 가보니 SVA는 이 교수를 알아봤다. 학교 측은 “우리를 찾아줘서 영광”이라고 반색을 하면서 “4학년으로 편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교수는 《American Myth》 사진집을 내고 소호에서 《Dream and Fantasia》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가 성황이라는 소식은 동아일보 이규민 특파원의 기사를 통해 모국의 신문에 소개됐다. 1997년 이 교수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American Myth》 누드사진전을 열면서 대한민국 사진계로 금의환향했다. 팽팽한 자신감으로 충무로에서 대형 스튜디오를 열었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터졌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닥친 것. 이 교수가 확보한 패션회사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고객들은 발길을 끊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하늘은 시련과 함께 살 길을 던져준다고 했던가?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동아일보 지면을 펼쳤다가 계명대 사진학과 교수 모집공고를 본 것이었다. 부랴부랴 마감일을 맞춰 17번째로 원서를 접수했고, 며칠 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계명대 신일희 총장이라고 합니다. 내일 아침에 서울시청 앞 백남빌딩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신 총장은 약속장소에서 몇 분 동안 이것저것을 묻더니 말했다. “우리 학교로 오소!” 이 교수는 몇 년 뒤까지 대학교수 채용 면접은 그렇게 보는 줄 알았다. 이 교수는 80년 중반부터 30년 가까이 교직에 있으면서 뉴욕, 도쿄, 베이징, 타이베이 등 해외 초대전을 비롯해서 30여 회의 누드사진전을 연 ‘강호의 대가’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누드사진에 대한 편견을 씻어내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는 것이 아쉽다. “벌거벗은 몸을 찍는다고 누드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 모델 옷 벗겨서 찍고는 누드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누드사진에는 원천적 예술정신, 작가의 주제 구상. 모델 선정의 노력, 작가와 모델의 소통 등이 녹아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누드사진 작가도 모델도 드물다는 것. 이 교수는 사진계에서 다큐 사진만 쳐주고 인물, 누드 사진은 여줄가리로 여기는 경향이 안타깝다.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작가도 적을뿐더러 비평도 부족하다. 이러다보니 한국누드사진가협회에 속한 회원은 200명이 넘지만 대부분 아마추어 작가들이다. 누드모델은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 교수에 따르면 누드사진이 예술로 대접받고 있는 외국에서는 일반인이 벗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심지어 지역 주민 전체가 벗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힘들게 구한 모델도 누드사진에 대한 이해가 얕아서 좋은 작품을 찍기가 힘들다. 모델의 포즈가 획일적이고 깊이가 없으며 몸에서 체취가 나는 모델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 “대학교수가 되자마자 서양화과를 설득해서 서양화 누드모델들이 사진실습도 같이 하게끔 했지요. 그러나 2년 만에 사진 모델은 안하겠다고 합디다. 모델조차 누드사진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셈인데 아직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 교수가 미국에서 《American Myth》를 완성할 때 커피숍에 모델을 구한다는 쪽지를 붙이자 예일대 박사 과정의 여성이 콜롬비아 대 교수인 남편과 함께 왔다. 모델 후보는 이 교수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흔쾌히 옷을 벗었다. 그는 하루 200여 달러를 받고 미국 남서부 지역을 같이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작가와 모델의 지적 교류는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교수의 사진사(寫眞史)는 중3때 까까머리 친구가 찍은 사진에 혼이 빼앗겨 사진의 세계로 들어온 지 50여 년이 흘렀다. 올 가을 회고전에 전시될 사진을 고르면서 사진들에 서려있는 기억들이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해지거나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편견과 위선에 맞서 광고사진과 누드사진의 지평을 넓혔지만 가슴 한 구석에 꿈틀대는 아쉬움을 떨칠 수는 없다. 아직 전문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누드사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드사진의 예술정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성’은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리 사회의 터부 때문일까? 이 교수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우리나라의 성이 미국보다 더 건전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 성문화가 위선적이고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자신이 성에 대해 윤리적으로 자신감이 없기에 인간본성을 똑바로 볼 수가 없고, 부정적 시각으로 누드사진을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교수 연구실에 켜켜이 쌓인 사진, 벽에 걸린 누드사진들의 여체가 “그래요!”라고 온몸으로 동의하는 듯하다. 이 교수 둘레로 동양미 그득한 누드사진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다른 기사 보기 [섹스 파이오니아①] "누드사진 찍으며 위선과 싸워왔지요" [섹스 파이오니아②] "누드사진, 한국은 눈감고 일본은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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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사진 찍으며 위선과 싸워왔지요”

    대구 계명대 미대 아트앤미디어학부 이재길 교수(65)의 연구실은 사진액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오는 10월에 열릴 ‘이재길 사진 50년 정년 회고전’에 전시될 사진들이다. 대부분이 여체(女體)의 신비가 담긴 누드 사진들이고 상당수는 해외에서 전시됐다가 되돌아온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누드사진의 세계를 연 작가로 꼽힌다. 누드사진의 개척자란 곧, 30여 년 동안 비난, 모욕, 위선과 싸워왔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고교 때 ‘사진의 도시’ 대구에서 이름을 날리던 ‘얄개 사진작가’였다. 대건고에 다니면서 교모와 교복 대신에 형에게서 빌린 대학 학사모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녔다. 콘테스트를 휩쓴 고교생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려해준 덕분이다. 이 교수의 운명은 중3때 친구 김기웅 씨(현 섬유회사 대표)가 바닷가에서 찍은 일출 사진을 보면서 정해졌다. 그는 이튿날 친구에서 사진 찍는 법을 배웠고,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사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을 했는데 당시 부유한 편이기도 했지만 예술의 멋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공기총,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를 때에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지만, 카메라는 단박에 사줬습니다.” 당시 직장인의 월급이 2만 원 남짓할 때 3만원이 넘는 페트리7S가 까까머리의 손에 들어왔다.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고, 현상소가 ‘작은 집’이었다. 성에 차지 않아 어른들이 다니는 월산사진예술학원에 등록했다. 정일성, 김태한, 신현국 등 내로라하는 ‘사진의 고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암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포토그라피》, 《카메라예술》 등의 잡지에서 여는 고교생 사진 콘테스트에서 상을 휩쓸었다. 고3때에는 대구 공화당사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국내 최초로 개인전을 연 고교생이라고 우쭐했는데, 아뿔싸, 자신보다 먼저 고교 때 전시회를 연 사람이 있었다. 서울의 유명 곰탕집 ‘하동관’ 주인의 아들로 나중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장이 된 김희중 씨였다. 10년 선배인 김희중 씨는 경기고 2. 3년 때에 각각 개인전시회를 열었고, 연세대 2년 재학 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 교수는 김희중 씨를 ‘삶의 모델’로 삼았고, 자나 깨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꿈을 꿨다. 이 교수는 중앙대 사진과의 전신인 서라벌예대 사진과로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동랑 유치진이 세운 서울연극학교(지금의 서울예대)에서 성적 우수자에게 미국으로 유학 보내준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옮겼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막내아들의 꿈을 받아줬고, 하숙보다는 누나 집에서 기거하라며 이불 보따리를 부쳤다. 그러나 누나 집에 갔더니 마당에 이불보따리가 팽개쳐 있었다. 판사였던 자형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분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돈이 남아돌면 사진관이나 차려주시지, 나는 이런 딴따라와 같은 지붕 밑에서 못 삽니다.” 이 교수는 꺼이꺼이 울면서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타박타박 남산골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숙하면서 오로지 미국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다. 지금은 원로 연기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종원, 김동현, 그리고 연출가 한태숙 등과 함께. 이 교수는 얼마 뒤 뜻하지 않게 평생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를 속이는 일을 벌이게 된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적을 두고 아버지 동랑이 설립한 학교에서 강의하던 유세 교수로부터 편입 제안을 받고 아버지에게 알렸다. 고향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흔쾌히 막내의 요청을 받아줬고 주저하지 않고 등록금을 부쳤다. 그러나 유세 교수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서 동국대 편입은 ‘없었던 일’이 돼 버렸다. ‘철없던 막둥이’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끙끙대다가 ‘잔머리’를 굴렸다. 아버지에게 동국대에 편입했다고 거짓말하고 등록금으로 서울 명동 유네스코 건물 옆에 10평짜리 사진 스튜디오를 차린 것. 어영부영 다시 사진의 세계, 고생문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서라벌예대 사진과 친구들과 함께 밤낮으로 사진과 살았다. 임대료를 내기 위해 밤에는 부근 현상소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대한민국 사진역사에 굵직한 성과를 냈다. 명동 양복점의 협찬을 받아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국내 첫 ‘광고사진전’을 연 것.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구분이 명확하고 광고사진을 홀대하는 경향이 큰데 그때는 훨씬 심했지요. 선진국에서는 세계적 사진작가들이 멋진 광고사진을 찍지요. 베네통은 올리비에르 토스카나가 찍은 연작 사진으로 세계적 위치로 브랜드를 격상시키지 않았습니까?” 첫 광고사진전을 여는 과정에서 ‘스타’가 탄생했다. 이 교수는 명동의 유명 음악다방 ‘꽃다방’ 지배인이었던 미남의 ‘주먹 형님’에게 사진전의 모델을 요청했다. ‘형님’은 대학생의 당돌한 요청에 기분 좋게 응했다. ‘형님’의 멋진 모습은 사진 속에서 빛났고 각종 잡지의 모델 요청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가 바로 현재 패션모델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재연 모델라인 엔터테인먼트 회장이다. 다른기사 보기 [섹스 파이오니아②] "누드사진, 한국은 눈감고 일본은 호평" [섹스 파이오니아③] "누드사진, 언제쯤 예술로 인정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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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트로겐, 정말 살찌는 호르몬일까…체중 변화의 진짜 이유

    먹는 양이나 생활 방식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체중이 늘거나 체형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폐경 전후나 호르몬 치료를 받는 시기에는 에스트로겐을 원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체중 변화에는 대사 속도와 근육량, 식욕, 수분 상태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관여한다. 2일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산부인과 전문의 클라우디아 메이슨 박사는 에스트로겐이 그 자체로 체중을 직접 늘리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에스트로겐 수치가 달라질 때 신진대사와 지방 분포, 식욕 조절 등 체중과 관련된 여러 기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년에 들어서면 몸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서서히 달라진다. 메이슨 박사에 따르면 30~60세에는 매년 약 0.5~1kg씩 체중이 증가하는 사례가 흔하다. 변화 폭이 작아 처음에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중과 체형, 옷이 맞는 정도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지방이 축적되는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변하면 엉덩이나 허벅지에 집중되던 지방이 허리와 복부 주변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전체 체중에는 큰 변화가 없어도 허리둘레가 늘거나 기존 옷이 불편해질 수 있는 이유다. 체중 변화에는 대사와 근육 감소도 영향을 준다. 에스트로겐 변화와 함께 몸이 평소 소비하는 에너지량이 줄어들면 같은 양을 먹고 같은 수준으로 움직여도 이전보다 체중이 늘기 쉬워질 수 있다. 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인슐린에 대한 반응도 달라질 수 있어 에너지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 근육량 감소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근육은 30대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으며 에스트로겐 감소가 이 같은 변화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근육량이 줄면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면서 지방 비율이 높아지고 체형 변화도 나타날 수 있다. ◆ 식욕 변화도 함께 살펴야 에스트로겐은 배고픔과 포만감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질 경우 배고픔과 관련된 그렐린은 증가하고 포만감과 연관된 렙틴은 감소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식사를 마친 뒤에도 허기를 빨리 느끼거나 음식에 대한 만족감이 줄어들 수 있다. 단 음식이나 과자, 빵, 파스타 등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찾는 빈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식욕에는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 건강 상태 등 다른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 체중이 갑자기 늘었다면 지방이 아니라 수분 변화일 가능성도 있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달라지면 몸에 수분이 일시적으로 쌓이면서 붓거나 복부 팽만감이 생길 수 있다. 짠 음식을 많이 섭취했거나 생리 직전에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메이슨 박사는 체중을 자주 확인하더라도 하루 단위의 숫자보다는 전체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루 사이 1kg 안팎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상적인 범위일 수 있지만 일정 기간 계속 증가한다면 의료진과 상담할 필요가 있다. 호르몬 대체요법(HRT)을 시작한 이후 체중이 달라졌다고 해서 에스트로겐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치료 과정에서 체중 변화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에스트로겐 자체가 지방을 늘리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노화에 따른 대사 변화나 다른 호르몬 변화, 수분 저류 등이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호르몬 치료의 목적 역시 체중 조절에 있지 않다. HRT는 폐경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안면홍조와 야간 발한, 질 건조증, 수면 변화 등 다양한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치료를 시작한 뒤 체중이 계속 달라진다면 담당 의료진과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활습관 관리는 체중 변화를 줄이는 기본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자연식품과 식이섬유, 지방이 적은 단백질, 건강한 지방을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고 가공식품과 첨가당 섭취는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과 근력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 정기적인 건강검진 역시 체중 변화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을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에스트로겐은 체중 변화에 관여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다. 중년 이후 체중이나 체형이 달라졌다면 특정 호르몬 하나만 원인으로 보기보다 대사와 근육, 식욕, 수분 변화와 생활습관을 함께 살펴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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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밀레니얼 세대, 섹스 덜 한다(연구)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을 연애를 즐기는 세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 전 세대에 비해서 섹스를 덜 하는 듯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샌디에고 대학과 플로리다 아틀랜틱 대학, 와이드너 대학의 공동연구팀이 미국인들의 생활습관을 조사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분석한 결과다. 20~24세의 밀레니얼 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같은 연령대였을 때에 비해 섹스 파트너가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 2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1965~1969년에 태어난 세대가 20~24세였을 때 18세 이후로 섹스 파트너가 전혀 없었던 이는 겨우 6%였던 데 비해 1990~1994년에 태어난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 비율이 15%나 됐다.특히 젊은층의 ‘비(非) 성생활’은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여성이 60년대의 2.3%에서 5.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쉽지 않지만 과거에 비해 젊은이들이 부모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성병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포르노물이 많이 보급된 것이 실제의 성관계를 대체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선 과거에 비해 ‘삽입’까지 하는 섹스를 하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성 간에 스킨십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진 면도 있다는 풀이다. 개인주의, 독립적인 성향이 심해진 것도 한 요인으로 제기된다.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라인 셔먼 교수는 여성들이 섹스에 더 소극적인 것에 대해 “여성들이 섹스에 대해 쓴 어휘들은 남성에 비해 더 부정적이었는데, 이는 성관계로 인한 불리한 영향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성행위 자료집(Archives of Sexual Behavior)’이라는 저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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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결혼관 부정적일수록 위험한 성적 행동 보여(연구)

    청소년들의 위험한 성적 행동은 성병이나 원치 않은 임신, 골반계 암 발병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켜 공공보건의 중요한 주제로 꼽힌다.이 같은 청소년의 위험한 성적 행동은 결혼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과거에 나온 적 있었는데, 결혼에 대한 태도와 욕구가 젊은이들의 건강한 성적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최신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주리 대학의 연구팀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결혼에 대한 태도와 성적 행동에는 상관관계가 있으며 결혼에 대한 태도는 인종, 피부색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7천 명의 청소년들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다양한 인종, 피부색을 지닌 이들에게 성적 행동과 결혼에 대한 관심 등을 물었다. 그 결과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은 위험한 성적 행동을 하는 경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덜 검은 편인 흑인들과 아시아계들이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더 검은 편인 흑인보다 이 같은 경향이 뚜렷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 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에 따르면 백인보다 비백인계에서의 성병 감염률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돼 있는데, 이번 연구결과는 그와 상통하는 것이랄 수 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안토니에트 랜도를 교수는 “성교육을 할 때 스킬을 위주로 하기보다는 연애 관계를 긍정적으로 맺는 법 등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 또 피부색이 건강한 성생활에 대한 캠페인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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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 성기암 치료법 전기 마련될까

    ‘남성 성기 암’에 대한 정밀 치료법 개발 작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 암 종합센터의 이 연구는 남성 성기암의 치료에 하나의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성 생식기 암은 성기의 내부 조직이나 피부에 종양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이 암은 95%가 ‘편평세포암종'(squamous cell carcinomas)으로 분류되는데 이런 유형의 암은 남성들에게 발병하는 암의 17%를 차지한다.성기암에 걸린 환자들이 의존하는 단 하나의 치료법은 수술이다. 그러나 특히 악성의 성기암에는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연구를 이끄는 스코트 톰린스 교수는 “성기암은 다른 어떤 암보다도 목표를 정확히 겨냥해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폐암, 두부(頭部)암이나 경부암 등 다른 편평세포암종과 유사한 점들을 찾아내고 43건의 성기암 사례를 대상으로 암의 진전단계, 증상 정도, 아류(亞流)형 등에서 다양한 양태를 분석하고 있다. 톰린스 교수는 “종양과 전이 간의 유전적 변형과 변이성에 바탕해 여러 처방을 복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면서 “이번 연구가 남성 성기암에 대한 치료법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로드맵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에 발간된 ‘암 연구(Cancer Research)’ 저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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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인, 자위는 늘고 섹스는 줄고

    핀란드인들은 세대와 남녀를 막론하고 점점 더 홀로 하는 섹스, 즉 자위행위를 더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파트너와의 성관계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핀란드 가족협회가 실시하는 ‘핀섹스(FINSEX)’ 서베이의 분석결과다. 이번 분석결과는 1971년, 1992년, 1999년, 2007년, 2015년 조사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파트너와의 성관계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나 성관계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 가운데 지난 수십 년 간 자위행위 빈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7년에 비해 2015년에 자위행위 빈도는 10%포인트 상승했는데 특히 22~44세의 여성들 사이에선 20%포인트나 높아졌다. 아직 남성의 자위행위 빈도가 높지만, 여성들이 점점 더 그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자위행위를 시작하는 나이가 거의 남자아이들과 비슷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트너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위행위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자위행위가 파트너와의 성행위가 줄어든 것을 보상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쁜 일상, 스트레스와 피로도 상승으로 성관계를 기피하는 추세에서 자위행위를 그 대안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핀섹스 서베이 책임자인 오스모 콘툴라 교수는 “자위행위가 전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자위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친 결과”라면서 “자위행위가 과거에는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늘날에는 거부감이나 불안감이 없으며 오히려 권장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콘툴라 교수의 말을 뒷받침하듯 젊은 세대일수록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자위행위를 더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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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 의사의 약 없이 발기 부전 극복하는 법 5

    성생활의 걸림돌인 발기 부전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특정 약물의 부작용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약 75%는 원인이 복합적이다. 혈관이나 신경 질환, 당뇨병 혹은 전립선과 연관된 치료나 수술을 받았을 때 일어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 연구팀이 약 없이 자연스럽게 발기 부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5가지를 소개했다. 1. 걷기 운동을 시작하라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에 30분씩 걷기를 하면 발기 부전 위험이 41% 낮아진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적당한 강도의 운동은 발기 부전 증상이 있는 비만한 중년 남성이 성 능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2. 제대로 먹어라 연구에 따르면, 과일, 채소, 통곡물, 생선 등 천연 식품을 주로 먹고, 적색육과 가공육, 정제 곡물의 섭취를 줄이면 발기 부전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3. 혈관 건강에 신경 써라 고혈압, 고 혈당, 고 콜레스테롤, 고 중성지방 등의 상태가 되면 심장과 뇌, 남성 음경의 동맥을 손상시켜 심장마비나 뇌졸중, 발기 부전을 유발할 수 있다. 혈관을 튼튼하게 해 이런 상태를 예방하려면 늘어나는 허리둘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복부비만은 혈관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 4.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라 적정 체중과 날씬한 허리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발기 부전을 막는 좋은 방법이다. 연구에 따르면 허리둘레가 45인치(114센티미터)인 남성은 32인치(81센티미터)인 남성에 비해 발기 부전 위험이 5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은 발기 부전의 두 가지 주요 원인인 혈관 질환과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인다. 또한 과도한 지방은 몇 가지 호르몬 생산을 방해해 발기 부전 위험을 높인다. 5. 케겔 운동을 하라  영국에서 나온 연구에 따르면, 담배를 끊고, 체중을 줄이고, 절주를 하는 등 생활방식의 변화와 함께 3개월에 걸쳐 하루에 두 번씩 케겔 운동을 하게 한 결과, 발기 부전 증상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케겔 운동법은 소변을 참을 때를 연상하며 근육을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건강포털 코메디닷컴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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