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섹스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Q) 얼마 전 은하선이라는 여성작가가 ‘이기적 섹스’라는 자신의 책에서 “중3 때 대학생을 꼬드겨 섹스를 했다”고 당당히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학생에게 ‘당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꼬드겨’ 성관계를 가졌다면, 비록 중학생이라고 해도 스스로 선택한 섹스를 했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이것이 온라인에서 시끌벅적한 논란을 야기했을까요? 미성년자는 정신이 미성숙해서 섹스를 해선 안 된다고요? 그럼 지금 한반도에 나잇값 못하는 수많은 어른들도 섹스를 해선 안 되겠네요? 이몽룡과 성춘향,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두 10대에 스스로가 결정한 섹스를 했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만 해도 10대에 다 결혼하고, 결혼식 날 처음으로 얼굴 보고, 첫날밤 당당히 섹스하고, 애도 낳아 잘 키웠는데….

 

A) 나는 섹스한다. 고로 존재한다

‘섹스’할 수 있는 나이는 언제부터여야 할까가 궁금증의 핵심이군요. ‘이기적 섹스’란 책을 두고 시끌벅적했던 까닭은 특히 ‘중3 때 대학생을 꼬드겨 섹스를 했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미성년’. ‘성년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뜻합니다. 현실에서 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과 담배를 사려 해도 신분증을 요구받습니다.

 

하지만 ‘섹스’에 이르면 그들은 무풍지대에 삽니다. 섹스는 밖으로 공개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미성년에게 섹스를 불허한다!”는 말은 소리 없는 알람과 다름없습니다. 효과가 하나도 없단 얘기지요. 지금도 은밀한 어느 공간에는 소년 소녀들이 섹스에 몰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3이 대학생을 ‘꼬드겨’ 섹스를 했다는 책 내용이 눈길을 끄는 건 어린 나이임에도 ‘성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섹스를 했거나 강요, 강제에 의해 섹스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 뜻과 의지에 따라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였다는 겁니다. 스스로가 대학생을 ‘꼬드겨’서 일을 치렀으니 성 자기 결정권을 적극 행사한 셈이고, 성 자기 결정권을 행사했으니 그는 중3임에도 성숙한 사람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진정 ‘성인’이란 그저 19세를 넘어선 존재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어서 비로소 성인입니다. 성인에게 섹스만큼 어울리는 건 없습니다. 섹스에는 언제나 선택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자기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섹스는 ‘거짓 섹스’입니다. 강간을 섹스로 결코 볼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성을 결정할 권리’를 침탈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충동을 통한 섹스도 정녕 섹스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충동으로도 ‘성을 결정할 권리’는 자칫 사라지기 쉽기 때문이지요. 충동은 스스로의 선택을 어렵게 만듭니다. 물론 충동은 타인이 힘으로 억누르는 강제와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요. 충동은, 무분별하거나 혼란스런 상태입니다.

 

선택이란 충동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과정입니다. 선택은 무분별함에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섬이기도 하고, 혼란스러움에서 비롯하는 망설임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선택으로 인해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 갑니다. 그러니 스스로 섹스를 결정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깨달음이란 헤아림입니다. 내가 누구와 어떻게 어떤 섹스를 할 것인지에 대한 헤아림입니다. 헤아림이 없는 섹스는 공허합니다. 충동에 그대로 돌진하니 공허합니다.

 

인간다운 섹스가 필요합니다. 아니, 섹스가 어찌 인간적일 수 있느냐고요? ‘동물적인 공부’가 불가능하듯, ‘인간적인 섹스’는 애당초 어불성설이라고요?

 

아닙니다. 인간다운 섹스는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섹스입니다. 섹스는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헤아림입니다. 그 헤아림에 임신과 출산이 빠질 수 없습니다. 누구와 섹스를 할 것이냐, 섹스로 임신을 할 것이냐, 임신으로 한 생명체를 이 세상으로 불러올 것이냐, 그렇게 불러 온 생명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를 헤아려야 합니다.

 

헤아림. 그것은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을 세는 행위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헤아림을 통해 섹스는 충동을 넘어섭니다. 헤아림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로 바뀝니다. 내가 정녕 섹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헤아려야 합니다. 그런 헤아림 속에서 나이란 그저 나이일 따름입니다.

 

섹스는 나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섹스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섹스를 빼놓은 채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까요? 철학자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나는 감히 말합니다.

 

“나는 섹스한다. 그리고 그 섹스를 선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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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이다. 인간 행위와 인간 본성, 인간의 삶을 다루는 윤리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수의 논문과 책을 발표했다. 대표 논문으로 <윤리적 이기주의 연구>, <조건과 능력> 등이 있고, 저서로는 <이기주의론>, <사피엔스 에티쿠스 : 윤리란 무엇인가 묻고 생각하다>, <철학, 물음이 답이다> 등이 있다.
댓글
  • 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 동물들의 삶을 제로베이선으로 보면 됩니다 사람나이 중2면 동물들은 자립합니다 부모들이 쫓아내죠.. 그런데 사람들은 죽을 때 까지 아이로 봅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중2병이란 생태계적으로 독립할 나이라는 말입니다!!!
  • 댓글의 중2병에 대한 해석이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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