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로티쿠스의 별난 성

인간은 언제부터 섹스를 했을까?


인간은 언제부터 섹스를 했을까?

세상에 이보다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묻는 것보다 훨씬 더 말이 안 되는 질문일 것이다. 어떤 모양이었던지 간에 우리의 첫 조상들이 이걸 안 했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섹스를 했을까? 모든 생물은 본능으로 하는 건데, 자연계의 그 많은 동물 중 오직 인간만이 쾌락을 위해 그걸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원숭이들은 암수 모두 자주 자위를 하는 바람에 가끔 동물원에서도 들킨다.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멧돼지의 오르가슴은 15분 이상 계속된다. 이렇게 인간 말고도 성에서 즐거움을 얻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위안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성을 뭔가 특별한 걸로 알도록 조건화돼 있는데, 과연 사람의 성은 다른 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사마귀나 과부거미 같은 곤충의 수컷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짝짓기를 하는 동물은 스웨덴 씨앗벌레로 무려 56시간 계속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즐거워서 이렇게 긴 시간을 붙어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른 수컷과의 관계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나비 종류는 수컷이 고치에서 부화하는 나비를 옆에서 기다렸다가 암컷이 나오면 바로 짝짓기를 하곤 왁스를 분비해서 암컷의 질을 막아버린다. 대부분의 나비가 한 수컷만을 알고 죽어야 하는 사연이기도 하다. 물론 고치에서 수컷이 나오면 머쓱한 듯 날아가 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종족보존을 위한 성행동은 집요할 만큼 엄숙하다. 생식이란, 인간의 경우 현미경으로도 잘 안 보이지만 그 길이가 우리키보다 더 긴 DNA들이 남의 세포로 들어가서 서로 그 내용물을 교환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내는, 그렇게 면면히 우리의 종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이도, 안 믿는 이도 있다. 어쩌면 아메바가 사람으로까지 진화 된다는 계통발생진화(phylogenetic evolution)까지는 못 믿어도 적자생존을 위한 적응에 의한 발달진화(developmental evolution)는 믿는 이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현재의 인간과 매우 흡사했던 한 영장류가 엄지손가락을 쓰면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손쓴 사람(homo habilus)은 400만 년 전쯤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지만 아직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손을 쓰니까 물건을 잡게 되고, 물건을 잡으니까 자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곧선사람(homo erectus)이 된 것이다. 두 발로 서서 걸으니까 골반은 뒤로 젖혀졌고, 많은 것을 보면서 지능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지능이 발달하니까 당연히 두뇌가 커졌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얼굴을 마주보게 되면서 많은 성적 매력 포인트들을 앞으로 가져왔다. 포유동물 최고의 성적 융기는 궁둥이인데, 여자들은 그보다는 적지만 더 멋있는 융기인 유방을 앞쪽에 갖게 되었다. 드물지만 궁둥이보다 더 큰 유방을 가진 여자도 있기는 하다. 두툼한 입술도 다른 동물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다.

 

40만 년 전의 최초의 인간인 슬기사람(homo sapiens)은 곧선사람보다 두뇌의 크기가 세 배나 커졌는데, 커진 머리는 젖혀진 골반과 함께 출산에 문제를 가져왔다. 땅을 기어 다니는 동물들은 새끼가 출산되는 길이 직선이지만, 사람의 산도(産道)는 뒤로 45도 젖혀져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법인데, 인간은 용케 이를 극복한다. 21개월 동안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할 태아를 9개월 만에 밖으로 내보내는 극심한 조산 형태로 진화하여 이를 해결했다. 진화라기보다는 적응이라는 말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워낙 조산이었고 보니 다른 모든 포유류들은 태어나면 바로 걷고 이미 위험을 알아차리는데, 인간은 1년을 키워야 겨우 그 정도 한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보노보(bonobo)도 태어날 때 아기 뇌의 무게가 어미의 45%나 되는데, 인간의 경우는 불과 25% 밖에 되지 않는다.

 

보노보는 원숭이도 침팬지도 아닌 독립된 종의 동물이다. 유전자가 비슷해서 그런지 이들은 성을 이용해 친밀감을 주고받을 줄 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먹이 앞에서 어미 자식 간에도 다투지만 이들은 다르다. 먹이가 앞에 있으면 우선 서로 성기를 애무해준다. 이렇게 되니 절로 친밀감이 생겨 다투기는커녕 ‘형님먼저, 아우먼저’가 된다. 이때 동성이고 이성이고는 상관이 없다. 그래선지 ‘사람이 보노보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동굴생활 이전의 원시시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수많은 포식자들과 함께 살면서 집도 마땅한 피난처도 없는데다 밤이 되면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된다. 출산한 여자는 아기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을 구해야 했고, 자연히 남자와 짝을 이뤄 그들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매우 사회적이며 똑똑하였다.

 

인간이 언제부터 결혼이라는 것을 했는지에 대한 학설 또한 많다.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엮이는 난혼으로 시작하여 차차 일부일처제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다. 남녀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둘씩 만났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이런 만남은 인간과 새에서만 있는데, 새 또한 혼자서 새끼들을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쌍을 이루는 것일 뿐이다.

 

유전자는 계속 진화하며, 복사되어 전달되는 메시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유전인자가 수십만 년을 이어오므로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걸 남자들은 잘 모른다. 여자의 생존본능을 자극했다가 역공을 당하면서도 이 이유 또한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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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댓글
  •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는 기분으로 막힘없이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다음 문장이 너무 재밌네요.

    "고치에서 수컷이 나오면 머쓱한 듯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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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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