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눈다고 처녀막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이성주의 생식기 탐험] ⑧질어귀와 처녀막
질(膣)어귀. 부끄러운 듯 오므린 꽃봉오리가 햇살을 받아 벌어질 때 꽃술을 에워싼 꽃잎처럼, 작은입술[소음순·小陰脣]이 자극을 받아 벌어질 때 드러나는 질구멍 주위의 속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성 외음부의 가운데 패인 부분으로 요도구멍 아래, 질구멍 주변인데 멋진 우리말 이름이 생기기 전에는 질전정(疾前庭)이라고 불렀다. 한자 뜻이 ‘질 앞뜰’이니 이 이름도 꽤 낭만적이다.
질어귀에는 두 가지 샘이 있다. 얼핏 잘 보이지 않지만, ‘애무의 귀신’들은 그야말로 귀신같이 알아본다고 한다. 질 아래쪽에 있는 두 샘이 큰질어귀샘이다. 이것을 발견한 덴마크의 해부학자 카스파르 바르톨린의 이름을 따 ‘바르톨린샘(Bartholin’s gland)’이라고도 한다. 의학교과서에서는 완두콩 모양의 점액 분비샘이라고 돼 있는데, 보통 사람의 눈으로 그 콩을 찾기는 힘들다. 그 샘을 혀로 핥거나 입술로 비비거나 잘근잘근 씹거나, 또는 손가락으로 후비거나 귀두로 똑똑똑 노크하면 엷은 우윳빛 액체가 스며 나와 질구멍 주위를 미끈하게 적신다.
요도구멍과 질 사이에 있는 샘은, 현명한 독자는 금세 눈치 챘겠지만 ‘작은질어귀샘’이라 부른다. 이 샘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알렌산더 스킨의 이름을 따서 ‘스킨샘’이라고도 부른다.
이 샘은 발생학적으로 남자의 전립샘에 해당한다. 요도구멍 바로 아래 있어서 요도를 보호하는 액체를 분비한다는 설명도 있지만, 요즘은 사정(射精) 기능이 주목받고 있다. 남자의 전립샘과 마찬가지로 사정과 관련된 단백질이 만들어지므로 ‘여성 사정기관’이라고도 불리는 것.
능수능란한 남성이 이곳을 마사지하거나 피스톤으로 자극하면 여자는 온몸을 비틀며 교성과 함께 요도구멍에서 액체를 뿜어낸다. 아직 남자의 사정(ejaculation)에 비해 여성의 사정(squirt)은 존재 자체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 남자의 사정과 같은 메커니즘이라는 주장과 요도가 압박받아 오줌을 싸는 것뿐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여성이 흥분해서 오줌을 싸든, ‘여성 정액’을 쏘든, 그것을 주관하는 것은 바로 작은질어귀샘(Skene's gland)인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성인 잡지나 포르노사이트에서는 스킨샘을 ‘U-스팟’이라고 부른다.
질어귀를 지나면 진짜 질(膣)의 문(門), 질의 창(窓)이 나타난다. 한때 ‘순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처녀막(處女膜)이다. 처녀막은 질 입구를 부분적이거나 완전히 막는 섬유조직으로 여성 생식기의 외음부와 내음부의 경계다.
처녀막은 사람마다 모양이 다르며 두께와 강도, 탄력성도 제각각이다. 가운데에 큰 구멍이나 잔구멍들이 있어 생리 때 피가 빠져가는데 구멍 크기도 침(針)이 들락날락할 정도에서부터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정도에까지 다양하다.
처녀막이 순결의 상징이었던 것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는 여성이 결혼 후 첫 잠자리 때 피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미리 관계를 가져 처녀막을 훼손했다지만, 유럽에서부터 동양에까지 대부분의 지역에서 처녀막은 ‘순결 이데올로기’로 여성들을 옭아매는 차꼬였다.
처녀막의 한자어를 풀이하면 처녀를 상징하는 막이고, 영어 hyme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Hymenaeus)에서 유래했다.
중국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 신랑이 첫날밤을 지내고 신부의 핏자국이 묻은 침대보를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만약 핏자국이 없으면 신부는 쫓겨나야 했고 일부 신부는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부를 죽이는 ‘명예살인’까지 정당화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첫날밤 혈흔이 없으면 ‘이혼의 씨앗’이 됐다. 1970~80년대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도와 경주의 호텔 베란다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의 상당수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처녀막이 처녀의 상징일 수 없다는 게 과학 상식이 됐다. 성행위를 하지 않아도 처녀막이 변형되거나 찢어질 수 있다. 필자의 청소년 시절 누군가 교사에게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처녀막이 찢어지느냐?”고 물었더니, 그 교사가 “그렇지 않다. 순결만 지키면 처녀막은 보존된다”고 대답했는데,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자전거나 말을 타다가도, 자위를 하다가도, 자궁암 검사를 받다가도, 심지어는 탐폰을 사용하다가도 찢어질 수 있다.
거꾸로, 성행위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처녀막이 파열되는 것도 아니다. 의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첫 성교 때 30%는 파열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70%에게서 출혈이 일어나지만, 이것도 처녀막 파열 탓이 아니라 첫 관계 때 주위 조직들의 상처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처녀막의 탄력성이 강해서 수 십 차례 성관계를 해도 처녀막이 온전한 여성도 적지않다.
처녀막에 대한 미신 가운데 하나는 첫날밤 처녀막이 찢어지면 그야말로 ‘찢어지는 고통’이 생긴다는 것인데, 처녀막에는 신경세포가 많지 않아서 단순히 처녀막 때문에 극심한 고통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처녀막’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지 않아서 결혼 전에 ‘혼수’ 삼아 처녀막 재생 수술을 받는 여성이 적지 않다. 한때 처녀막은 ‘돼지 창자’를 질구멍에 꿰맨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 역시 미신이다. 처녀막은 파열됐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섬유조직이 질 가장자리에 남는다. 임신해도 사라지지 않으며, 폐경기에는 부분적으로 각화현상이 나타난다. 처녀막재생수술은 남아있는 처녀막 섬유조직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시 꿰매어 잇는 수술이다.
반면에 처녀막 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처녀막에 구멍이 없거나 너무 적은 경우다. 생리혈이 빠져나가지 못해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성교통이 생기면 처녀막 구멍을 넓히거나 파열시키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과학계와 여성계에서 처녀막 대신 가치중립적인 ‘질막(膣膜)’이라는 용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질벽(膣壁)의 막처럼 들리기도 하기에 집입구막 또는 질구멍막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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