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을 더욱 후끈하게…침대 위 ‘더티 토크’
언젠가 인터넷 어느 신문의 주요뉴스라고 쓰인 곳, 바로 아래 박스에 있던 문구다:
청순글래머 모델 O, 위아래 볼륨 다잡은 똑똑한 포즈
비키니 모델 K, 그건 어떤 남자 거니?
이 문구를 통해서 남자들이 생각하는, 화끈함의 세계란 것을 조금 엿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훌륭한 학생은 배운 걸 바탕으로 응용한다. 요즘 아침마다 수영을 한다. 운동이라면 섹스-솔직히 섹스보다 재미있는 운동을 아직 찾지 못했다!-외에는 하지 않다가 한 달 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영을 한다. 분기별로 옷장 정리를 하듯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좋은 습관을 붙이려고 노력하는 게 올해의 결심이다.
오후보다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운동을 하는 것이 몸의 활력을 더하는 데 효과적인 것 같다. 아침에 수영하러 갈 준비를 하는데, 인터넷 신문 헤드라인의 ‘그건 어떤 남자 거니?’ 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늘 입는 핑크 원피스 수영복 대신 블랙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셀카를 찍었다. 수영복 사진에다 ‘그건 어떤 남자 거니?’라는 제목으로, 나만 아는 비밀 SNS 계정에 고이 모셔두었다. 베드(침대) 토크의 예제를 또 하나 건졌다고 기뻐하면서.
침대 위 더티 토크는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다. 행동을 유도하는 대화 그리고 ‘말로 죽이기’다.사실 침대 분위기를 단번에 뜨겁게 만드는 장치로, 비속어를 섞은 더티 토크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자, 따라해 봐. fuck me please. baby, harder!”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귈 때, 이 더티 토크의 기회가 드디어 왔다. 하지만 왜 그렇게 부끄럽고, 어색하던지. “시발 존나 좋아(으엑!)” 라고 말하는 게 더 쉬웠을까. 속된 말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비속어를 써야 맛이 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LET'S MAKE LOVE라는 아름다운 말보다 FUCK ME! 라는 말이 더 몸을 꼴리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f 단어는 욕이라는 인식이 머리에 꽉 박혀서인지 생각보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harder는 괜찮았다. 남자의 아래에 깔린 와중에도 r 발음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 혀를 목구멍 쪽으로 당기는 데 신경 쓴 나란 여자.
피스톤 운동과 더티 토크를 동시에 하는 것은 일종의 멀티태스크다. 익숙해지고, 또 잘하려면 역시나 연습이 필요하다. 첫 단계는, 이름 부르기. 파트너 말고 엉뚱한 사람을 부르지 않는 한, 절대 실패할 수 없는 훌륭한 침대 토크법이다. 가장 만지고 싶은 부위를 어루만질 때나 좋은 느낌이 들 때, 숨을 내뱉으며 ‘OO야~~’라고 외친다. 익숙해지면 “거기, 거기 좋아.” 라든지 “너무 커(다분히 남자의 기를 세우기 위한 전략적인 멘트지만 항상 효과가 있다!)...”라고 외치거나 섹스가 끝난 뒤 파트너의 뺨에 코를 비비면서 귀 아래에 대고 “정말 좋았어.” 라고 속삭인다. 또, 입에 올리기에 난해한 부위-예를 들면, 엉덩이와 고환 사이처럼?-를 핥아달라고 요구할 때는 담대하게 내뱉어야 한다. 주저하는 눈빛이나 말을 더듬는 순간 끝장이다. ‘더티’ 레벨이 낮은 베드 토크라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워들은 김에 한 번 써볼까 하는 수행 자세로는, 어렵다. 진심이 아니기에 와 닿지 않는다.
어느 8월, 객실 창으로 끈적한 바닷바람과 피서객들의 소음이 흘러들어오는 대낮이다. 베개와 옷가지가 침대 주위에 아무렇게 널려 있다. 격렬한, 전날 밤의 흔적. 나란히 누워 있는데, 갑자기 나를 자기 몸 위로 끌어당기는 남자.
-골반 춤을 춰 줘.
-어디서?
-내 배 위에서.
-(오 마이).
온갖 망측한 자세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잘도 해내면서 정작 남자의 골반 위에서 춤을 춰달란 말을 듣자마자 귓바퀴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성기와 같은 신체부위를 짚어주지 않아도 베드 토크에 진심 어린 욕망을 담으면 느닷없는 상황에도 성적 긴장은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베드 토크가 굳이 길어야 할 이유는 없다.
패트릭 마버의 희곡 <클로져 Closer>에,
래리 /니 보지는 무슨 맛이야?
앨리스 /천국
이란 대사가 있다.
짧고, 핵심을 찌르는 베드토크의 예제로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