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인 듯 도구 아닌 도구 같은 베개
운동을 하느니 차라리 굶는 게 편한 나로서는 헬스클럽 정기회원권을 끊고 운동하러 다니는 친구들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삼겹살을 먹고 그 보상으로 헬스클럽에 가서 2시간 뛰고 왔다는 친구가 나보고 또 같이 운동하러 다니자고 연락한다. 아니, 귀찮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복을 챙겨 입고 화장을 하고 밖에 나가 운동하느니 나는 파자마를 입고 밥을 먹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겠어. 그리고 운동이란 걸 하면 요가매트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사실 헬스클럽 가자는 친구의 전화도 잠옷 차림에, 공복인 상태로 받았다. 침대 위에 가로로 누운 다음 벽에 두 다리를 올려 하반신을 I 자로 만든 채 말이다. 다리를 풀어주는 운동으로 I 자 다리가 효과가 있다나.
요가매트 위에서 몸을 뒤적이는(?) 걸 끝내고 나면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벽에 척 올린다. 그런데 엉덩이가 벽에 잘 안 붙어. 엉덩이가 벽과 침대 사이에서 뜨는 게 못내 거슬렸는데,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베개를 엉덩이 아래 괴는 것. 더 이상 엉덩이도 뜨지 않고 다리도 벽에 잘 밀착하는 느낌이다. 베개 하나가 주는 차이가 비단 이 I 자 다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남자가 위에서 움직이는, 피스톤 운동의 기본자세를 잡을 때 골반 아래에 베개를 괴면 더 이상 밀착감이 좋을 수 없다. 골반이 앞쪽으로 기울어져 페니스가 질 안을 밀고 들어올 때 앞쪽 질벽이 강하게 쾌감을 느낀다. 밀리고 달라붙는 느낌. 찌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술자리에서 자기 껀 많이 길어서 섹스할 때마다 여친이 찔리는 것 같다고 우는 소릴한다며, 그걸 자랑이랍시고 떠들어대던 한 대학동창이 생각난다.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함께 운동하는 사이라 목욕탕에서 서로 벗은 몸을 다 봤을 거다. 그래, 내 꺼 크다고 큰소리만 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넘어 가겠어, 하는 전우애를 난 그 자리에서 느꼈다. 그러니 칼이 아니라 찰떡이 피스톤 운동의 포인트라고, 굳이 내가 오지랖을 떨 필요는 없지.
다시 베개로 돌아와서, 베개를 섹스에 끼워 넣으면 자신이 ‘도구’를 이용한단 압박감을 느끼지 않아 좋다는 점이다. 베개는 모양도, 쓰임새도 일단 그 짓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 섹스 도구 사용에 관한 이런저런 독려(?) 글을 보지만 글쎄. 경험상 남자들은 섹스토이를 도우미로 보지 않고 자신의 페니스 vs 토이, 라는 그림으로 해석하는 듯했다. 모자란 남자.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느낌. 침실에서 나로 만족 못해?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면 발기력도 위협을 받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는 섹스토이는 쓰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섹스토이는 보관도 잘 해야 한다. 남의 집 세간살이 구경에 취미가 있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할 때면 섹스토이를 잘 치웠는지 이중삼중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거실에 내 책들이 있는데,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방문하면 섹스 도서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구석으로 내몰린다. 인테리어를 해치는 청소 도구 마냥. 그러니 섹스토이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바이브레이터가 있는데, 얼굴 마사지 기계처럼 보이지만 어찌 되었든 섹스 토이다. 비밀스러운 장난감은 항상 조심하는 게 좋다.
진동과 관련한 섹스 토이는 당신의 손가락을 썼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의 오르가슴 곡선을 그린다. 무엇보다 진동기를 통해서는 오르가슴이 확실히 보장된다.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듯 쿵쿵거리는, 클럽의 거대한 우퍼 위에서 이상한 희열을 느꼈던 것은 이 진동의 힘이었으리라. 굳이 트집을 잡자면, 절정에 다다르는 게 너무 쉽다. 쉬운 여자. 쉬운 남자. 쉬운 장난감. 뭐든 ‘쉽다’의 형용사가 붙으면 우스워 보인다. 너무 간단히 오르가슴에 올라서 파트너와의 섹스가 시시하게 느껴지는 위험 부담이 있다. 더 나아가 지금 내가 느끼는 게 진짜 오르가슴인지 의심을 하는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 조금 풀어 이야기하자면 섹스로 가능한 천국의 맛이 가까이에 있으나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도대체 그것이 무얼까 한동안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남근의 힘줄이 내 혀에 닿을 때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나선 그런 걸 고민했는지 마저 잊고 지냈다는 사실.
글/윤수은 섹스 칼럼니스트
고뿔조심허시구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