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나잇 스탠드의 규칙


원 나잇 스탠드. 하룻밤의 섹스다. 살면서 원 나잇 스탠드를 몇 번 경험하긴 했다. 모두 그날 밤으로 끝났다. 상대방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익명성(멀리 여행을 떠났을 때 일어남)’이 주는 자유로움과 단 하룻밤이라는 조건을 철저하게 지킨 덕이었다.

 

원 나잇 스탠드가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같은 하룻밤이 다른 무언가로 바뀔 거란 기대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적을수록 원 나잇 스탠드의 성공확률은 오른다.

 

내 지인 중에 ‘하룻밤’ 사랑으로 기네스북에 등재가 목적인 마냥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 그가 내 친구와 원 나잇 스탠드를 하려다 실패했다. 남자는 내 친구의 핸드백을 골목길의 술집 옆 나무 위로 던져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내 친구가 원한 건 그저 자신의 가방을 되돌려 받는 것뿐이었다. 친구는 하룻밤을 생각하는 남자에 대한 정보가 아주 많았다. 그런데도 남자는 내 친구에게 ‘계속’ 만나고 싶다는 등의 말로 그 날 밤을 연장하려고 애썼다. 솔직하지 못하게. 사랑은 쉽고, 확실해야 한다. 그리고 하룻밤 사랑처럼 짧은 즐거움일수록 이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

 

클럽에서 10분 전에 만난 사람이든 소개팅을 통해 몇 달을 알고 지낸 파트너이든 섹스는 다른 인간을 내 몸 안에 집어넣는 행위다. 그래서 즐거운 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원 나잇 스탠드의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려면, 일단 잠자리가 깨끗해야 한다. 깨끗한 공간은 사람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하룻밤만 즐기려는 자신이 덜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위안도 있다.

 

밀라노로 가는 기차에서 일본 남자를 만났다.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는 내게, 남자는 미녀에게 어울리는 공간이 아니라며 시내 5성급 호텔의 룸을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예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취리히로 출장을 가야 한다며 미리 아침 식사용 간단한 빵과 음료를 사 들고 호텔 방으로 왔다. 이런 남자와 하룻밤을 나누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룻밤 섹스에는, 반드시 도전이 있다. 오늘 밤 이후로 서로 볼 일 없는 사이라는 전제가 사람을 오픈시킨다. 나 역시, 하룻밤 상대에겐 거슬리는 점도 유연하게 넘어가는 아량을 베풀었다. 밀라노의 일본 남자는 한 손으로 여자를 다루는 것에 집착했다. 굳이 한 손으로, 내 두 발목을 무리하게 잡더니 역시나 무리하게 C자 모양으로 내 몸을 접었더랬다. 순간 시트 위 인간 공벌레가 된 기분. 그렇게 남자는 한 손으로 날 통닭처럼 잡더니 피스톤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허리와 엉덩이를 그의 페니스 높이까지 들어 올리더니 이번에는 발목을 양손으로 잡고 내 무릎을 벌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벌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요지경 속 구경거리 마냥 자기의 피스톤 운동을 관람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내가 식어가는 게 느껴지자 이 남자, 바로 나의 발목에 키스를 퍼붓는다. 얇고, 예쁜 발목이라는 칭찬과 함께 침을 잔뜩 바른 입술을 복숭아뼈에 비벼대며 말이다.

 

나는 태도가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나이스한(!) 태도로 무장한 하룻밤 섹스가 끝이 나쁠 리가. 섹시하다는 표현에 움찔하는 여성은 있어도 예쁘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성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원 나잇 스탠드를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한 체크 사항, 콘돔이다. 상대의 피부가 도자기처럼 매끈하고, 또 깨끗이 다려진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의 성기 역시 클린할 거란 보장은 없다. 콘돔은 하룻밤 사랑의 필수 도우미다. 생각 없이 잠자리를 한 덕에 비타민제처럼 성병 치료제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수모를 겪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콘돔을 신용카드와 더불어 지갑 안에 꼭 넣고 다닌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글/ 윤수은 섹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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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자기계발우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의 저자. 경향신문사 40기 출판국 기자로 출발, <레이디경향>, 에서 생활팀 에디터로 활약했다. <주부생활>, <마이웨딩>, <스포츠칸>, , <싱글즈>, <엘르>, <코메디닷컴> 등의 신문, 잡지에 솔직담백한 섹스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댓글
  • 청결이 중요한 건 피차일반...
    익명의 씨앗이 내몸에 머무르는 것을 허용했다가 뒷일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 더 정확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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