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가 가리키는 범위

대부분의 문명에서 인류는 음부를 가리려고 애써왔다.


인류는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손이 해방됐다. ‘도구의 인간’은 그래서 가능해졌다. 손이 해방돼 섬세해지면서 뇌도 덩달아 발달했다. 보다 높은 곳에서 넓게 보게 되면서 시각이 발달했고, 두 발 보행으로 척추가 중심축이 되면서 꼬리가 퇴화했다. 인류의 직립보행은 성기(性器)가 노출되는 결과도 낳았다.


인류는 성기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 도드라져 보인다. 성인 남자는 우거진 음모의 숲 앞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물건이 늘어져 있고, 그 뒤로는 역시 큼직한 한 쌍의 불알이 덜렁덜렁 달려 있다. 여자는 서있을 땐 음모가 난 불두덩과 생식기의 나머지 윗부분이 보일 정도이지만, 쪼그리고 앉으면 새로운 세계가 드러난다. 작은 젖꼭지 크기의 공알과 질구를 둘러싼 도톰한 음순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인간은 남녀 모두 꼬리가 없으므로 뒤에서 봐도 성기의 일부가 보인다.

 

인류 대부분의 문명에서는 이 노출되는 부위를 가리려고 애써왔고, ‘허리가리개’부터 거들, 팬티까지 다양한 발명품을 낳았다. 문화인류학자들은 남녀의 도드라진 성기를 가리지 않으면 ‘성 메시지’가 그대로 드러나 인류의 집단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추정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생식기 보호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물론 일부 부족은 성기를 가리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으며, 수단의 누바 족처럼 잘 생긴 사람에 한해 성기를 드러내는 것을 허용하는 부족도 있다. 하지만 문명사회에서는 대체로 자지와 보지는 꼭꼭 숨겨야할 대상이었다. 남녀 모두 ‘옷 벗기 게임’을 할 때 가장 나중에 팬티를 벗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만 보아도 알지 않는가.

 

수단의 누바 족은 최근까지 성기의 노출이 허용됐다. 다만 잘 생긴 사람에 한 해서.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꽁꽁 숨기기만 해서인지, 여자가 팬티를 벗으면 드러나는 부분 중 어디가 ‘보지’인지를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질(膣)은 보지에 포함되는지 물으면 대답이 반반으로 갈린다. ‘야동’ 배우의 영혼 없는 단골 코멘트인 “오빠! 더 깊게, 더 깊게 넣어줘!”를 듣다보면 성행위 때 자지와 반응하는 부위 전체가 보지인 듯도 하고, 그래서 질도 당연히 포함되는 듯하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보지와 질은 별개다. 이렇게 정의된다.

 

∙보지 : 「명사」 ‘음부’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

∙음부 : 「명사」『의학』 남녀의 바깥 생식 기관. 주로 여성의 것을 가리킨다. ≒전음(前陰).

∙전음 : 「명사」『의학』 =음부(陰部).

 

보지는 여성의 ‘바깥’ 생식 기관인데, 이런 풀이 자체가 석연치 않다. 우선 보지의 의학용어라는 음부와 전음이 유사어인지 동의어인지 확실치 않다. 또 음부와 전음이 의학용어라고 돼 있는데, 대부분의 의학사전에서는 외음부와 내음부를 구분하며, ‘여자의 바깥 생식기관’을 ‘외음부’라 일컫는다. 국어사전대로 ‘보지=음부’라면 ‘음부=외음부+내음부’이기에, 보지에는 질과 자궁, 난소 등 내음부를 포함해야 논리적이다. 하지만 보지에 자궁과 난소를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보지는 여성의 성기이고, 여성 생식기는 이보다 더 큰 범주라고 봐야 상식적인 것 같다.

 

아마도 국어학자들이 보지라는 낱말을 깊이 연구해 정의했다기보다는, 영어단어 ‘Vagina’와 구분되는 ‘Vulva’의 정의를 기본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이렇게 뒤죽박죽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국어사전의 정의에만 순진하게 따른다면, 연인이 “보지를 빨아줘”라고 말할 때 혀를 그녀의 질에는 절대로 넣지 않아야만 정상이 되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든, 의학용어사전에 따르든 보지는 배꼽에서 쭉 내려가서 사타구니 사이의 둔덕인 ‘불두덩’에서 ‘샅(회음)’ 사이의 조갯살처럼 생긴 부위를 가리킨다. 이 조갯살은 아랫입술이라고 해서 대음순(大陰脣), 소음순(小陰脣)이 감싸고 있으며 속에 공알(음핵, 클리토리스), 요도구, 질구, 성교 때 질구에 윤활 점액질을 분비하는 큰질어귀샘(바르톨린샘) 등이 있다. 

 

불두덩은 치구, 치골구라고도 불리는데 치골 위 지방층이다.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서 사춘기 때 도드라지면서 ‘음모의 밭’이 되며 폐경기 때에는 수그러든다. 이곳에 음모가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냄새 또는 페르몬의 창고 겸 운반체 역할을 한다는 설, 성교 때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라는 설 등 다양한 ‘음모론’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털이 없는 보지를 백보지 또는 민보지라고 부르지만 국어사전에는 백보지를 제주도 방언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백보지 : 「명사」『방언』 ‘밴대보지’의 방언(제주).

 

반면 밴대보지와 알보지는 비속어가 아닌 일반명사로 인정하고 있다. 보지는 속어이고, 밴대보지는 그렇지 않은 것도 우스꽝스럽다.

 

∙밴대보지 : 「명사」 음모(陰毛)가 나지 않은 어른의 보지. ≒밴대ㆍ알보지.

∙알보지 : 「명사」 =밴대보지.

 

사전의 풀이대로 밴대보지의 줄임말은 ‘밴대’이며, 레즈비언들이 보지를 서로 맞대어 비비는 성행위인 ‘밴대질’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밴대질은 ‘여자끼리 성교를 흉내 내는 짓’으로 풀이되며, 비슷한 말은 대식(對食)이다. 대식은 ‘궁중에서 궁녀끼리 몰래 부부로 짝지어 동성연애를 함’이 첫 풀이이고 둘째 풀이가 ‘밴대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밴대보지와 성교하면 3년 재수 없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고대 동양에서는 명기(名器)의 조건 중 하나가 털이 없는 것이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그런 소문을 냈다는 말까지 있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초까지 여성의 음모가 혐오의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여자들이 고통을 참아가면서 털을 뽑거나 지지거나 태워 없앴다. 미술계에서는 쿠르베,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이 자신의 명작에 거웃을 그려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전까지 그림에서 음모는 없었다. 미술가들이 고용하는 누드모델은 거웃을 제거한 밴대들이었다. 


오르세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구스타프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1866년 작품이다.


심지어 서양의 ‘범생’들은 여자에게 음모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1819~1900)은 첫날밤에 신부의 음모를 보고 혼비백산하여 ‘잠자리’를 피했고, 그의 아내는 의사의 검진을 받고 처녀임을 입증한 뒤 화가 존 밀레이(1829~1896)와 또 결혼했다.

 

한편, 인체의 조갯살인 음순은 사람마다 모양과 색깔이 제 각각이다. 상당수 남성들이 음순의 모양과 색깔로 처녀 여부와 성교의 빈도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의학적으로는 몰상식한 소리다. 눈과 코, 귀의 모양이 다르듯 음순의 모양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영국과 미국의 여권단체들은 ‘라비아 프라이드 운동’을 펼치고 있다. ‘Labia’는 음순을 뜻하므로 ‘음순 사랑 운동’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각자의 보지 모양을 인정하고 자신의 것에 자긍심을 가지라고 주장하면서 ‘이쁜이 수술’에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사진작가 니콜라 카나반이 펼치고 있는 ‘스커트를 올려라(Raising the Skirt)’ 운동도 ‘라비아 프라이드’와 맥락이 같다.


❶보지, 자지는 비속어인가?

❷보지와 자지의 어원

❸보지가 가리키는 범위


④보지와 자지는 생식기?

⑤보지의 구조와 일생

⑥아랫입술, 음순

⑦불두덩과 공알, 보지의 변두리

⑧질어귀와 처녀막

⑨질과 G-Spot

⑩자궁과 난소

⑪보지의 액체

⑫건강한 보지

⑬자지는 무엇인가?

⑭정자의 일생

⑮해면체와 발기

⑯정액과 청수

⑰고환과 전립샘

⑱예술과 문학 속의 생식기

⑲법과 생식기

⑳인공 생식기와 생식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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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출생
    1965년 9월 10일 경북 고령군

    현직
    ㈜바디로 대표, ㈜코리아메디케어 대표

    학력
    고려대 철학과 학사
    연세대 보건대학원 석사

    경력
    1992~2006 동아일보 기자
    2004~2005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 초빙연구원
    2009~현재 대한의료윤리학회 이사
    2010~현재 나누리의료재단 이사

    저서
    “황우석의 나라”(2006)
    “대한민국 베스트닥터”(2004)
    “뇌의학으로 본 한국사회”(2004)
    “인체의 신비”(2003) 등 10권

    수상
    대한민국 청년대상 신문기획보도 부문(2000)
    팬텍 과학기자상(2001)

    국내 첫 성 포털 속삭닷컴과 헬스2.0 포털 코메디닷컴을 이끌고 있다. 동아일보 의학 기자 때 약한 성기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 기사와 성 칼럼을 썼으며 중앙일보에도 1년 동안 성 칼럼 ‘이성주의 아담&이브’를 연재했다. 현재 아침마다 30여만 명에게 ‘건강편지’를 보내고 있다. “황우석의 나라” “뇌의학으로 본 한국사회” 등 10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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