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어? 집중해요!
자보고 별로면 어째요? 라고 고민을 토로하는 메일이 종종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문장으로 답한다.
-한 번 더 자보고 아니면 차 버려요.
내가 성의가 없어서 이런 대답을 하는 게 아니다. 파트너와의 잠자리 고민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관련한 모든 일은 3가지 단계가 있으며, 그것은 받아들임-즐거움-열정 순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크게 동감하며, 별로라고 느끼는 섹스는 이 ‘받아들임’의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것이다. 타고난 몸이, 행위가 평균에 미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눈앞의 잠자리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딴 곳에 있는 사람과 오르가슴을 논하는 건 사치다.
섹스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거로 모자라 정말 열정적으로 즐기는 지인이 있다. 오랜만에 서로 아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오지 않는 거다. 일이 있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와 눈이 맞아 그녀의 집에서 섹스도 즐기고 감자탕도 먹고 왔단다. 이 친구, 시내에 있는 모든 여자들과 다 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전적이 있지만 외적으론 엄청난 미남도, 근육질도 아니다. 처음 만난 여자와 98%의 잠자리 성공률을 자랑하는, 그의 비밀무기는 ‘대물’도, 돈-...사실 꽤 번다!-도 아닌 집중력이었다.
-음, 공명? 앞에 있는 여자에게 모든 감각을 맞추는 마음가짐이지.
21세기 서울 카사노바의 시크릿은, 싱겁게도 집중하기였다. 눈앞의 파트너에게 완전히 집중하다 보면 절로 열정이 오른다는 것이 그의 변.
누구나 습관을 넘어서 열정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 있다. S의 경우에는 왈리볼 wallyball(배구와 거의 비슷하나 코트의 벽을 이용하는 게 특이점)이 그것이다. 자기 팀에서 ‘왈신’이라는 별칭도 얻은 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왈리볼 코트를 간다. 별로 흥미도 없는 근력운동을 하는 이유도 왈리볼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그가 왈리볼을 할 때 두어 번 구경을 간 적이 있지만 내가 온 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경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왈리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 날도 3시간이나 왈리볼 코트에서 땀을 흘린 그는, 스포츠 백에서 이온음료를 꺼내 들이키다 말고 잠시 생각하더니,
-쉬워. 공에 힘을 실으면 돼.
라고 대답한다.
뭐야. 그게 다야? 라고 황당해하며 좀 더 실용적인 팁을 말해보라고 윽박질렀지만 정말 그게 다라며 되려 그는 억울해했다. 한 홈런 타자의 인터뷰에서 홈런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치냐며 비결을 이야기해달라니까 공을 끝까지 보면 된다고 했던 말이랑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까, 어떻게 공에 힘을 싣느냐고?
-몰라. 그냥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공에 힘이 다 실려.
여기도, 집중. 뭐든 잘하려면 집중해야 한다.
잠자리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들
때로는 음악이 섹스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
섹스할 때마다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를 반주 삼아 움직인다고 생각해보라. 은밀한 곳을 들락날락하는 미세한 살의 질척임을 듣는 건 포기해야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잠자리를 할 때도 위험요인은 있다. 저도 모르게 음악에 정신이 팔려 남자가 당신의 종아리를 어깨에 올리는지 아니면 엉덩이를 움켜쥐고 있는지조차 잊을 수도 있다. 집중력은, 섹슈얼 힐링 sexual healing을 외치는 마빈 게이의 필 feel이 아니라 피스톤 운동에 열중하는 남자의 몸에 쏟아야 한다.
엉덩이를 한 대 찰싹 맞았다. 집중해, 라는 남자의 손 신호다. 그게 아니면 100% 순수하게 자신의 판타지를 반영한 몸짓이기도 하고. 그의 손이 내 옆구리를 쓰다듬는 게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린다. 살이 쪘기 때문이다.
살이 찌면 섹스에 집중이 어렵다. 친구 N은 남자의 위에 올라타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고 그러지만 나는 내 의지로 남자의 위로 올라갈 때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내 몸매에 자신이 넘칠 때다.
그리고 매트리스에 등을 딱 붙이고 뒤집어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누워 있을 때는 대부분 초콜릿과 밀가루 음식 과다 섭취로 인해 배와 허리가 두툼할 때다.
남자에게 깔려 있으면서도 몸매 걱정 같은 딴생각이 계속 들면 눈을 질끈 감는다. 상대의 눈을 쳐다보면 자꾸 눈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예를 들면, 허벅지가 저번보다 더 두껍네? 같은)을 읽으려고 하니까 말이다. 지금 하반신이 서로 얽혀 있는데, 속마음을 읽어서 뭐하려고. 다 쓸데없는 짓이다.
여자친구가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 템포를 늦춰서 상대방의 정신을 다시 집중하도록 만든다. 삽입 섹스를 잠시 멈추고 파트너의 혀로 자신의 몸을 훑게 만든다. 페니스가 잠깐 휴식할 시간을 벌어 절정으로 가는 힘을 더 아낀다. 또, 여러 포지션을 번갈아-한 자세 당 대략 30번을 넘기지 않는다!-가며 잠자리를 하는 것도 오래, 집중력을 잃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고전 팁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집중하려면 미리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내가 즐겨 쓰는 방법은 스스로 섹스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미리 잠자리 신을 이야기로 만들어 기억해둔다. 남자가 내 팬티를 벗길 때 다리를 어떤 식으로 모을지, 남자의 위로 올라갈 땐 고개를 어느 방향으로 틀지 같은 구체적인 과정을 미리 머릿속에 짜 놓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 틀의 힘을 빌리다 보면 자연히 잠자리의 흐름이 유연해져서 나중에는 손이, 입술이 알아서 멋지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