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정신 고백이 어려울 땐, 카베동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카베동을 아십니까. 이 단어를 바로 이미지화할 수 있는 당신은 분명 일본 애니나 드라마 팬이다. 카베동은, 상대방을 벽에 밀어붙인 다음 한쪽 손으로 벽을 쾅 치는 행위를 말한다. 덕후들, 특히 여성에게 로맨틱하게 어필하는 카베동은, <아는 형님>에서 김희선이 패널들과 카베동 코너도 선보일 만큼 이젠 꽤 대중적인 아이템이 되었다.

 

일명 벽치기. 카베동은 보통 남성이 여성을 벽 한구석으로 위압적으로 몰아간다. 일면식이 없는 사이에서는 곤란하고,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전제하에 당하면(?) 꽤 가슴 두근거리는 행위다. 원빈의 ‘얼마면 되니?’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건, 이 카베동의 정수를 훌륭한 비주얼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카베동만큼은 상대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기선제압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팔로 벽을 쳐서, 단박에 상대방의 육체와 감정을 자신에게 옭아맨다. 상대방을 코너로 모는 카베동은 결국, 내게 완전히 집중하라는 육체의 언어다.

 

그래서 맨 정신으로 고백이 어려울 때, 카베동을 이용하면 분위기가 단숨에 잡힌다. 대학 때 남자 동기가 술에서 좀 깨야 한다는 핑계로 나를 밖으로 데려와 술집 외벽에 함께 기대 있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 아이는 술김에 어설픈 카베동을 내게 시전하며 우리 둘의 거리를 좁혔다. 덕분에 그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더랬지.

 

카베동은 연애의 한 과정으로만 넘기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이템이다. 열정이 살짝 가라앉은 커플의 섹스에 카베동을 슬쩍 삽입해보라. 돌아서면 지겨움을 느끼는 게 인간이다. 몸에 익숙해진 섹스 루틴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그게 또 지긋지긋해서 주위(더 나아가면 사람을!)를 바꾸고 싶어 한다. 평소 삽입 외에 다른 애무에 눈이 덜 뜨여진 파트너를 단숨에 에로물의 남자 주인공으로 바꿔주는 게 이 카베동이다.

 

카베동의 핵심은, 판타지. 남자 파트너는 정지 수색권을 가진 경찰이다. 그리고 커플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 벽을 만든 한 팔은 고정한 채 나머지 팔로 그녀의 머리칼부터 목, 팔, 다시 가슴을 훑으며 눈 앞의 그녀의 몸이 ‘안전’한 지 체크한다. 그녀의 남쪽 깊숙한 곳은 가장 소중한 부위니만큼 손 대신 남자의 입술을 먼저 가져가 다정한 인사를 속삭인다. 적지 않은 수의 여성들이 클리토리스 애무만으로도 황홀한 ‘오’를 경험하지만 뭐니 해도 섹스에서 클라이맥스는 삽입이다. 카베동의 종점 역시, 피스톤 운동이고.

 

두 사람이 마주 보든 등을 마주하든 여자의 하반신이 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야 삽입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옆에 가구나 무게를 실어도 괜찮은 물건이 있다면 여자는 한 손을 그곳에 두는 게 자세 잡기가 편하다. 피스톤 운동을 하다 보면 남자의 두 손은 자연스레 여자의 골반 근처에 두게 된다. 이왕 판타지로 시작한 것, 여자를 돌려세운 다음 그녀의 고개와 한 팔이 남자 쪽을 감싸게 하면 그 순간이 영화가 된다.

 

덧붙이자면, 섹스가 거칠다, 뜨겁다 등의 평을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시간을 소비해야 감상이란 것도 생긴다. 햇반도 2분 이상은 돌려야 맛있다. 하물며 섹스는 일정 시간 이상의 몸의 소통이 있어야 좋은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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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자기계발우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의 저자. 경향신문사 40기 출판국 기자로 출발, <레이디경향>, 에서 생활팀 에디터로 활약했다. <주부생활>, <마이웨딩>, <스포츠칸>, , <싱글즈>, <엘르>, <코메디닷컴> 등의 신문, 잡지에 솔직담백한 섹스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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