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속옷에 관한 판타지
“드로즈가 어떤 건지 알아?”
응. 뭔데? 남자 팬티. 사각이고, 붙는 디자인이지.
느닷없는 드로즈 질문에 잠시 생각하는 눈치인 내 친구, 나보고 남자 속옷을 직접 사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 맹세코, 없다. 그리고 내가 입는 게 아니니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였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드로즈라는 단어에 처음 노출된 것은 팬픽션을 통해서다. 문맥을 통해 막연히 남자 팬티의 다른 이름이겠거니 했다. 어차피 내가 입을 속옷이 아니니 그런 게 있다~정도로만 말이다.
그러다 며칠 전, 섹스 칼럼을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데 느닷없이 드로즈 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팅 하고 떠올랐다. 그래서 친구를 만난 김에 드로즈가 얼마나 대중적인(?) 단어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드로즈라는 단어 개념 정립을 통해 세럼, 로션, 크림 등 화장품 제형 분류에 취약한 보통 남정네들의 심정을 이해했다고나 할까.그래서 내친김에 구글에서 드로즈를 검색해보았다. 세상에. 신세계다. 입으면 그 즉시 힙합 스타처럼 보일 것 같은 디자인이 수두룩하다.
이런 핫한 속옷을 입지 않고, 보여주지 않은 지나간 남자들. 반성해.
사실 삼각팬티나 트렁크는 디자인에 따라서 급하면 수영복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헐렁한 트렁크는 왜인지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부채질하고 있는 배 나온 중년의 이미지다. 삼각팬티는 덜 자란 남자 같은 느낌이고. 순전히 개인적인 소견이다. 모든 여성의 의견을 조합한 리서치 조사는 아니니 걱정 마시라. 하지만 드로즈는, 다르다. ‘유혹’이다. Baby를 부르던, 사랑스러운 옆집 소년 같던 저스틴 비버가 우주최강 섹시남, ‘나쁜 남자’로 성공적인 이미지 전환을 할 수 있던 것도, 청바지 위로 노골적으로 드러낸 드로즈 패션 덕이었다.
물론 모든 드로즈가 이 구역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몸에 쫀쫀하게 피트되는, 시크한 디자인만이 사각팬티가 아닌, ‘드로즈’가 되는 거다. 포인트는, 성기에 완벽하게 달라붙은 드로즈 중심부를 터치해보고(라고 쓰고 얼굴을 비비고 싶은...이 진심)싶게 만드는 디자인이다. 여자의 푸쉬-업 브라 같은 느낌으로, 드로즈 중심부를 더욱 불룩하게 만든 디자인이 있더라.
드로즈가 이성에게 어필하는 것은, 섹시한 란제리처럼 벗겨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점이다. 피스톤 운동을 하기 전에 허겁지겁 벗어 던지는 단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하여금 전희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게 드로즈다.
어차피 섹스하려면 벗을 건데, 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는 잠시 접어두자.
내 남자가 눈이 돌아가게 멋진 드로즈를 입고 침대 위로 올라오면, 일단 그의 귀 아래부터 목선을 따라 손을 내릴 거다. 손의 지문으로 그의 상반신에 바퀴 자국을 낸다 생각하고 끈적하게 말이다. 하반신은 서로 아직 붙으면 안 된다. 장난스런 키스가 오가는 것은 오케이. 나의 손가락은 그의 배꼽 주위를 크게 맴돈 다음 그의 드로즈 밴드 부분을 슬쩍 튕긴다. 땀으로 달라붙은 그의 드로즈 끝단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허벅지 부분을 들썩이는 것도 괜찮은 테크닉이다. 그가 하반신을 밀어붙일 기미가 보이면 슬쩍 배를 민다. 드로즈의 중심부가 멋지게 산을 이루지 않으면 아직 안 돼, 라는 신호를 보낸다. 어드밴스드 레벨의 당신이라면, 코와 입술로 슬쩍 그의 드로즈 중심부를 문지른다. 조금 더 있다가 만나, 라는 신호로 말이다. 그리고 남자의 드로즈는 애무 덕에 땀이 살짝 나서 쉬이 잘 벗겨지지 않는 데 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면 트렁크는 너무 쉬워. 아무리 땀에 절어도 1초면 몸에서 날아간다. 뭐든 너무 쉬우면 매력 없다.
글/ 윤수은 섹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