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섹스에 미치는 영향
섹스의 향기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Z군을 떠올린다. 그와 나눈 가을 저녁의 오럴 섹스, 별로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 시간으로 돌아가 기억을 새롭게 만들고 싶다. 그날 밤, 우리는 삼겹살을 구워 먹고, 마늘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술기운에 해롱대는데, 갑자기 하반신이 시원해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뭔가 축축한 것이 내 은밀한 ‘그곳’ 위에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이런. 첫 오럴 섹스를 준비 없이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데, 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이미 늦었다.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멘붕을 경험했지만 오럴 섹스라는 신세계 덕에 온몸이 곤죽이 되어 Z군을 밀어낼 의지는 사라졌다. Z군은 그런 나를 배려하는 차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 다시 내 하반신을 탐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 끝나고 Z 군이 입을 쩝쩝 다시며 그러는 거다.
“원래, 이런 맛이야?”
그의 송곳니에 낀 내 은밀한 곳의 털을 떼어내면서 말이다.
아...
그 날 이후로 나는 딸기랑 사과를 엄청 먹었다. 일종의 수행이었다. 커피콩을 많이 만지는 사람의 몸에는 커피향이 난다. 과일을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과일향이 날거다. 사람은 끊임없이 세포를 교체한다. 세포 분열에 의해 1년 후면 인간은 약 97%의 새 세포로 채워진다. 나는 원래 그런 냄새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때 미처 샤워를 하지 못 했을 뿐이다...이 기억을 가진 세포들도 하루빨리 우주 저 너머로 사라지길 바란다.
파인애플이나 망고, 사과와 같은 달콤한 과일은 남자를 ‘맛있게’ 만들어준다. 물론 아무리 과일을 많이 먹어도 특유의 실험실 향기 같은 정액의 맛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는 음식과 정액의 맛은 연관이 있는 거로 알려져 있다. #달콤하고 상큼한 과일 #맛있는 남자 와 같은 해시태그를 붙여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생선 썩는 냄새가 나는 정액은 세균에 감염되었다는 신호일수도. 지독한 냄새가 나는 성기는 생김새도 너절하다고(다행히 이런 페니스를 마주치진 않았다!) 한다. 술이나 카페인, 붉은 고기 등을 많이 먹으면 불쾌한 몸 냄새를 유발한다는 정보도 함께 올렸다. 업로드를 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띠링~하는 새 글 알림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을 켜서 이메일을 확인하니 내 남자가 댓글을 달았다.
내 남자
지금 나만 친구들이랑 술자리에 있다고 이런 글을 올리는 거야?
나
팩트를 올렸을 뿐이야.
내 남자
하. 과일 안주를 시키지.
나
좋으실 대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이다. 평소에는 무심했던 벽의 몰딩이나 오븐 안을 청소할 때다. 침실 화장실 안의 벽장을 열었다. 제일 위의 선반은 크리넥스와 화장품 솜, 면봉, 치실 등이 있다. 그 아래 선반은 내 남자의 화장품이, 제일 아래 선반은 나의 화장품과 기타 액세서리들이 있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 위에는 얇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샤넬 향수 뒤에 숨겨진, 제일 귀퉁이에 있는 윤활액을 꺼내어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Kama Sutra Oil of Love 라는 먹을 수 있는 윤활액이다. 개인적으로 스트로베리&샴페인 맛을 선호하는데, 윤활액이니 당연히 끈적거리지만, 가끔 특별한 오럴 섹스를 즐기고 싶을 때 꺼내 쓰면 효과가 아주 그만이다. 콘돔의 소재인 라텍스에 묻어도 안전하고, 오일이 피부를 은은하게 데워주는 효과도 있다. 오늘처럼 술을 잔뜩 마시고 올 남자의 ‘맛’이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없으면 이런 제품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 향기에 민감한 건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
외출 전에 반드시 향수를 뿌리지만 섹스 전에도 귀 뒤나 발목에 살짝 뿌리는 것을 좋아한다. 습한 여름철에는 보송보송한 느낌이 좋아서 베이비파우더로 땀이 많이 나는 곳에 미리 분칠을 한다. 제아무리 럭셔리한 향수로 온몸을 샤워해도 체취에 확실한 영향을 주는 건 역시 음식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발레단에서 시즌 투어를 할 때 무대 파트너를 배려해서 마늘이 들어간 김치처럼 향이 강한 음식을 일절 먹지 않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난번 채식 커뮤니티 모임에 갔을 때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은 회원의 몸에서 장아찌로 목욕을 한 듯 절인 냄새가 나서 곤혹스러웠다. 팔을 한 번 휘저을 때마다 그 남자의 체취는 내 코를 마비시켰다. 멀어지고 싶어서 의자를 조금씩 티 안 나게 옆으로 옮겼지만, 그 남자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시 자기 의자를 내 곁으로 옮겨 가까이 앉았다. 빨래를 자주 하지 않거나, 향이 강한 음식점에 다녀오고 나면 탈취제를 옷에 뿌린다는 개념이 없거나, 요리를 할 때 환기 팬이나 초를 쓰지 않거나 아니면 이 모든 카드를 받고 하나 더, 스스로 잘 씻지 않는 남자일 수 있다. 그 남자는 온몸을 냄새 주머니로 만들어 놓고도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이성이 관심을 보일 거란 자신감을 입고 있는 듯 보여 여러모로 경탄(?)을 자아내었다.
아래층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남자의 발걸음이 정상인 걸 보니 적당히 마셨나 보다. 과일 안주를 자기가 다~먹었다며, 신호를 보낸다. 역시, 곧바로 꿈나라에 들어갈 태세는 아니구나. 그가 술에 취했다고 냄새를 아예 맡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는 새벽에 가볍게 샤워를 했지만, 확신이 없다. 아래쪽의 향기가 괜찮은지 마음이 놓이지 않을 때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팬티 아래에 손끝을 집어넣었다가 빼서 냄새를 맡는다. 별론데? 라고 생각이 들면 물로 다시 씻는다.
“냄새 괜찮아?”
“무슨 냄새?”
“남자는 향기에 약하다고 하더라고.”
“누가 그래?”
“거울 속의 내가.”
“아냐...얼굴이야.”
그래, 그럴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