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호텔 옆방의 신음과 망사스타킹


거의 반년을 기다린 공연을 보러 작년 12월 말에 도쿄에 갔다. 구단시타 역 근처의 비즈니스호텔에서 2박을 했는데, 연일 맑은 날씨 덕에 묵었던 21층의 창가에서 눈 덮인 후지산이 보일 정도였다. 공연도 보고, 도쿄 시내 관광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여행의 화룡점정은 정작 체크아웃을 하는 날 새벽이었다. 너무 이른 새벽에 눈이 떠져 신년 계획이나 세울까 하던 참에 옆방에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들려서 잘못 들었나 하는데 연이어 간드러진 여자의 신음이 옆방에서 새어 나왔다. 신음소리만 듣고, 아, 일본 사람이네, 하고 단정(?)지었다. 일본 성인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듣는 이를 굉장히 의식한, 한결같은 고음이 어찌 보면 가식적이라는 인상도 받았는데, 정확히 그런 성인 동영상에서 듣던 신음소리였다. 덕분에 잠이 확 깬 나는 옆방과 잇닿아있는 벽에 귀를 가져다 대고 본격적으로 남의 사생활을 도청(?)하며 연말연시를 밝혔다. 이른 아침인데도 익명성이 보장된 호텔이란 공간이라서 그런지 신음소리가 열렬하다. 그리고 자라나는 청춘인 양 남(그것도 여자!)의 신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오랜만에 몸이 흥분했다.

 

사실 무의미한 신음보다 잠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더티 토크가 섹스를 더 핫하게 만든다. 원하는 바를 자세하게, 동시에 파트너의 잠자리 스킬을 칭찬하면 섹스 시간이 즐겁게 길어질 거란 예상을 대강 할 수 있다. 네가 이렇게 해줄 때 정말 좋다, 라는 말을 건네는 데 열심히 안 할 수가 있나. 다만,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잠자리에서 이렇게 구체적인 표현을 듣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전 여친이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잠자리에서마저 자기를 ‘가르치는’ 투로 칭찬해서 질려버렸다는 모 대학동창의 말처럼. 그렇다. 어떤 이들에겐 섹스 도중에 말하기가 생각보다 꽤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그냥 좋을수록, 신음을 크게 내지르는 게 서로를 만족시키는 단순한 방법일지도.

 

신음을 절대적으로 참아야 하는 공간은 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계신 집. 설마 어른이 있는 공간에서 한 번도 섹스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언젠가 한 번 남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와 내 침대에서 섹스를 했다. 어머니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신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침대를 보면 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어떻게 해. 섹스가 재미있으니 입에서 신음이 절로 나오는데 참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 나도 모르게 내 손바닥 대신 남친의 손을 잡아끌어 입을 막았다. 팁이라면, 신음을 좀 더 참을 만할 때 그의 손가락을 성기마냥 빠는 것. 영화 <원초적 본능 2>에서 운전석의 샤론 스톤이 옆자리 남자의 손가락을 빠는 장면은 좋은 참고자료다.

 

파트너의 신음만큼이나 옷을 벗는 소리 또한 사람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속옷을 끄르는 소리만큼이나 섹시한 게 스타킹을 벗길 때 나는 소리다. 물론 여기서 스타킹은 망사스타킹이다. 영화 <물랑 루즈>의 주제가였던 레이디 마멀레이드 뮤직비디오를 보면 망사 스타킹의 코드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오늘 밤 나랑 자고 싶냐 는 노골적인 가사에 맞춰 4명의 여가수 전원 망사 스타킹을 착용한 것만 봐도 망사 스타킹이 노리는 비주얼 효과가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다. 예전 어머니들이 남편의 사랑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 망사 스타킹을 신었다는, 안방 뒷이야기들은 이미 전설이다. 아내의 단정한 미디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망사 스타킹. 그 부조화의 야함이 남편의 물건을 금세 딱딱해지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 믿었단다. 시각, 청각적으로 제대로 밀당을 하는 아이템. 생각난 김에 망사 스타킹을 신을까 하다 찬바람에 지레 질려 기모 레깅스를 입어버렸다. 유혹보다 강한, 1월의 추위. 


글/윤수은 섹스 칼럼니스트

  • Blank 2f561b02a49376e3679acd5975e3790abdff09ecbadfa1e1858c7ba26e3ffcef

    profile

    섹스 자기계발우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의 저자. 경향신문사 40기 출판국 기자로 출발, <레이디경향>, 에서 생활팀 에디터로 활약했다. <주부생활>, <마이웨딩>, <스포츠칸>, , <싱글즈>, <엘르>, <코메디닷컴> 등의 신문, 잡지에 솔직담백한 섹스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댓글
  • 흥분되면 오나니가 최고죠~
페이스북에서 속삭을 만나보세요
속삭
Original 1628810363.5313268
Original 1628810343.805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