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고양이와 페니스, 그리고 터치
남자들이 페니스를 만질 때 꽤 세게 잡는다는 걸 알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자신의 몸이라 그런 거다. 내가 누군가의 몸을 만질 때 아무 조심성 없이, 덥석 만지는 것은 곤란하지 않나. 여러 가지 정보-예를 들면, 알루미늄 소다 캔을 잡는 정도로 페니스를 잡기-를 통해 내 생각보다 세게 만지는 게 낫다, 라는 판단이 섰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자의 성기를 만질 때 ‘악력’의 조절이 고민이다. 페니스는 내게, 새끼 고양이 같은 존재다. 신기하고, 귀엽지만 막상 만지려고 하면 내가 혹여나 그 생물체를 다치게 할까 봐 주저하는 마음이 든다. 조그만 관심에도 발딱 일어서는 것, 남자의 페니스는 확실히 새끼 고양이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이리저리 좀 알아보려 만지면 자기 멋대로 흥분해서 ‘같이 놀고 싶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그러고 보니 내 생각보다 꽉 붙들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새끼 고양이와 남자의 페니스는 말이다. 엊그제 남자의 페니스를 손으로 만지다 새끼 고양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성기를 잡는 것 말고 남자의 몸을 터치하는 데 새삼 게을렀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트를 붙잡거나 가끔 남자의 옆구리를 훑을 뿐, 다정하거나 열정과는 거리가 먼?
섹스도 내 삶의 일부니 발전성을 늘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이라 더 그렇다. 그래서 1월에 유독 자기 계발서를 많이 찾아 읽는 편이다. 여하튼 자기 계발 분야에서는 감정이 먼저냐, 행동이 먼저냐, 에서 항상 액션이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걸 섹스에 적용하면, 손 터치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의지가 필요한 섹스 테크닉도 일단 먼저 행동으로 옮기면 사랑스러운 감정, 뜨거운 열정이 뒤따라온다는 것. 섹스리스 커플들의 주 레퍼토리가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요!’ 다. 발전이 있는 섹스 라이프를 원한다면, 일단 뭐든 시작하기. 그러면 ‘하고 싶은’ 마음이 뒤따라 올 거다.
손 터치의 경우, 손을 파트너의 몸에서 떼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파트너를 만지다 보면 어제보다 더 사랑하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여기에 좀 더 정성이 투입되려면, 판타지가 필요하다. 성기뿐만 아니라 파트너의 몸 전체를 ‘새끼 고양이’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 수없이 멋진 사람들이 많은데, 침대 위 눈앞의 한 사람에게 올인하는 나의 액션에 몰입하는 데는 판타지보다 더 좋은 솔루션이 없다.
예전 남자친구가 내 청바지를 벗기려고 할 때였다. 전희고 나발이고 곧바로 몸을 섞고 싶어 서로 안달이 난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내 청바지 앞섶을 검지로 두어 번 톡톡 친 다음 차분히 지퍼를 내렸다. 그 순간 난 이미 오르가슴...은 아니고, 굉장히 감동했다. 하고 싶어 미치겠지만 우선, 널 소중히 ‘열겠어’의 의미로 받아들였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겨울에 정전기가 잘 일어나서 어떤 것이든 만지기 전에 미리 툭툭 건드리는 습관이 있었다. 백 퍼센트 나의 오해였지만,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사소한 손 터치 하나가 섹스 판타지를 불러일으킨 거다. 파트너의 몸을 새끼 고양이로 치환해서 생각하기, 정전기 방지 손동작을 세상 다정한 로맨틱 가이의 터치로 착각하기. 세계를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보려면, 눈에 뭐가 씌어야 한다.
글/윤수은(섹스 칼럼니스트)